이제 막 날이 밝아오는 새벽에 깊은 산속 계곡을 홀로 걸어 올라 간다. 점점 사람들의 인기척도 사라지고 가끔 보이던 사람들의 흔적 마저도 완전히 사라져 갈때 쯤 작은 두려움을 마주한다.  커다란 공간 속에 홀로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숲 속에서는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너무 작아 몸을 굽혀 유심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잘 발견 되지 않는 작은 생명체들은 마법과도 같은 초능력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숲속의 요정은 상상이 아닌 실제로 존재 한다. 단, 숲 속의 동화는 평화롭지 않다. 먹고 먹히는 수겁의 먹이사슬 속에서 생존의 역사를 써 내려간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생명들은 숲속의 요정처럼 반짝이는 순간이 있다.  맑고 찬 공기를 마시고 차가운 계곡물을 거슬러 올라가며 내 안을 향하던 모든 감각은 이제 모두 밖을 향하고 있다. 저 앞에 있는 어두운 나무 그림자에 신경이 쓰이고 발 밑을 빠르게 지나가는 바위틈에도 신경이 쓰인다. 내 눈과 귀는 더욱 민감해지고 작은 움직임과 소리에도 신경이 간다.  모든 생명은 자신만의 길이 있다. 같은 길은 없다. 다른이가 걷고 있는 길이 내가 걸었던 길이라고 착각하고 집착하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꼰대"라고 한다. 다른이에 대한 존중이 빠진 자신의 권위를 위해 도구 삼으려는 행위. 이 또한 나만의 길 위에 놓여진 장애물이라면 과감히 뛰어넘자.  길, 우리는 항상 길 위에 있다. -2022.7.17 Shin Ho Chul   총칭 찐따오씨아(金刀峡)

지루한 천국

가을이 깊어졌다. 여름에는 5시면 날이 밝았지만 지금은 6시가 넘어가야 날이 밝기 시작하고 여름에는 8시가 되어야 어두워 졌지만 지금은 6시만 되어도 어둡다. 아침 저녁은 춥고 햇볕이 쨍쨍한 대낮에도 그늘 아래에 있거나 바람이 불면 쌀쌀하다. 반팔과 반바지는 옷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두꺼운 옷들이 밖으로 나온다.

가족들과 집근처 산으로 단풍 구경을 갔다. 산의 나뭇잎들은 이미 울긋불긋 했고 어떤 나뭇잎들은 특별히 아주 빨갛고 아주 노랗게 물들었다. 가족들과 하루종일 걸었다. 산을 오르고 사진 찍고 먹고 마시고 산을 내려오고 평지를 걷고 자전거타고 그늘에 앉아 쉬기도 하며 하루종일 곱게 물든 나뭇잎에 둘러싸여 보냈다. 몸은 힘들었지만 두런두런 이야기도 하며서로 응원도 하며 지나간 시간들. 고운 단풍잎처럼 우리 마음도 곱게 물들였다.

자연이라는 예술가가 계절이라는 물감으로 세심하고 웅장하게 그려놓은 풍광은 우리의 정신과 신체를 정화해 주었다. 남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러한 풍경에 매료되어 발길을 멈추는 것을 보며 어쩌면 우리의 본능은 시멘트 구조물이 아니라 이러한 자연을 갈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노르웨이로 이민간 한 한국분이 이런 표현을 했다고 한다"한국은 신명나는 지옥이고 노르웨이는 지루한 천국이다". 나는 비록 노르웨이에 있지는 않지만 오늘 하루 "지루한 천국"에서 살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2022.10.23 Shin Ho Chul

단풍나무
중국 베이징 가을, 단풍나무